스네프루의 실험: 굴절 피라미드와 붉은 피라미드
목차
1) 피라미드 시대를 연 왕, 스네프루
사카라의 계단 피라미드가 새로운 장을 연 이후, 제4왕조에 이르러 파라오 스네프루(Sneferu, 재위: 기원전 26세기)는 피라미드 건축을 국가적 프로젝트로 격상시킵니다. 그는 세 개의 대형 피라미드를 남기며 "피라미드의 아버지"라는 별칭을 얻게 되었습니다.
스네프루는 왕위 계승을 강화하기 위해 왕녀 헤테페레스 1세(전 왕의 딸로 추정, 일부 학자들은 전 왕이 '후니'라고 주장)와 혼인했습니다. 이 부부에게서 태어난 아들이 바로 쿠푸(Khufu, 기자 대피라미드의 주인공)입니다. 즉, 스네프루의 건축 실험이 없었다면 쿠푸의 대피라미드도 불가능했을 것입니다.
2) 메이둠의 무너진 피라미드
스네프루의 첫 번째 도전은 메이둠(Meidum) 지역이었습니다. 원래는 계단식으로 설계되었던 피라미드를 스네프루가 개축하며 우리가 생각하는 일반 피라미드 형태로 전환을 시도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메이둠의 피라미드는 짓는 도중 외벽이 무너지게 되었습니다. 현재는 '계단만 남은 탑'의 모양처럼 보입니다.
아랍인들은 이 피라미드를 제대로 된 피라미드가 아니라는 의미에서 "탑탑(El-Haram el-Kaddab, 거짓 피라미드)"이라고 불렀습니다.
이 실패는 이후 건축 기술을 보완하는 실험으로 이어졌습니다.
메이둠의 무너진 피라미드의 주인과 관련해서는 의견이 분분합니다.
제3왕조 마지막 파라오로 알려진 후니가 피라미드를 착공하였으나 생전에 완성시키지 못하고 스네프루가 이어서 완성했다고 합니다. (물론 무너졌지만..)
후니의 무덤이 발견되지 않은 상황이라, 메이둠의 무너진 피라미드가 후니의 무덤이라는 주장도 있습니다.
다만, 후니의 무덤이 아니라 스네프루가 자신의 피라미드를 착공하다가 무너진 것이라는 견해도 있습니다.
3) 기묘한 모습의 굴절 피라미드
스네프루의 두 번째 실험은 다슈르(Dahshur)에 세워진 굴절 피라미드(Bent Pyramid)입니다. 하부는 54°의 급한 경사로 올라가다가, 높이 약 47m 지점에서부터 갑자기 43°로 꺾여있는 피라미드입니다. 그래서 마치 허리가 굽은 듯한 독특한 모양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 피라미드가 굴절된 이유에 대해서는 여러 설이 존재합니다.
- 건설 도중 구조 불안으로 붕괴 위험을 감지해 각도를 낮췄다는 설
- 왕의 갑작스러운 건강 문제 혹은 사망을 대비해 서둘러 완성했다는 설
- 의도적으로 새로운 형태를 시도했다는 설
지금까지의 연구는 1번, 즉 안전상의 이유가 가장 유력합니다. 실제로 내부에는 금이 간 흔적과 보강 흔적이 발견되었습니다.
이 굴절 피라미드는 내부 구조가 복잡하게 구성되어 있습니다.
- 북쪽과 서쪽, 두 개의 입구
- 내부 매장실이 상부와 하부에 따로 있어, 마치 두 개의 계획을 하나로 합친 듯한 모습
오늘날 여행객들은 굴절 피라미드 내부 입장이 가능하며, 좁고 가파른 통로를 따라 직접 들어가 볼 수 있습니다. 어두운 공간을 지나 매장실에 도착하면, 4,600년 전 건축가들의 고민이 담겨있는 듯한 느낌을 받을 수 있습니다.
4) 완성형으로 나아간 붉은 피라미드
굴절 피라미드에서 교훈을 얻은 스네프루는 같은 다슈르 북쪽에 세 번째 피라미드를 착수합니다. 이것이 바로 붉은 피라미드(Red Pyramid, Al-Haram el-Ahmar)입니다.
이 피라미드의 높이는 약 105m이며, 각도는 안정적인 43°로 처음부터 끝까지 동일한 각도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표면에 있는 석재가 붉은빛을 띠는 석회암이라 '붉은 피라미드'라는 이름이 붙여졌습니다
이 붉은 피라미드는 인류 최초의 완벽한 "진정한 피라미드(True Pyramid)"로 평가받습니다. 계단형·굴절형을 거쳐 드디어 이상적인 형태가 완성된 것입니다. (일반적으로 학계에서는 이러한 피라미드를 위한 첫 시도가 메이둠 피라미드라 여겨지고 있습니다.)
내부 구조는 굴절 피라미드보다 단순하지만, 세 개의 연속된 방과 높은 천장이 특징입니다. 오늘날에도 관람객이 내부까지 들어가 볼 수 있어, 그 웅장한 스케일과 정밀함을 체험할 수 있습니다.
5) 스네프루 시대의 의미
스네프루는 최소 세 기의 대형 피라미드를 건설하며, 고대 이집트 건축 기술을 비약적으로 발전시켰습니다. 이 과정에서 사용된 전체 석재의 양은 약 800만 개로 추정됩니다. 이는 다른 피라미드 뿐만 아니라 쿠푸의 대피라미드(약 230만 개)보다도 많은 양으로, 스네프루 시대 건축의 규모를 잘 보여줍니다. 이와 같은 그의 실험 덕분에 후대 왕들은 안정적인 설계와 기술을 이어받을 수 있었습니다.
6) 여행자를 위한 팁
다슈르는 기자보다 한적해, 현지 분위기를 더 깊이 느낄 수 있는 장소입니다.
- 굴절 피라미드: 내부 입장 가능. 다만 통로가 매우 가파르고 공기가 탁하니, 호흡기에 약한 분은 주의
- 붉은 피라미드: 내부도 개방. 넓은 공간이 있어 굴절 피라미드보다 체험이 쾌적
- 교통: 카이로 시내에서 자동차로 약 40분~1시간. 보통 사카라 투어와 묶어서 방문
맺음말
스네프루의 굴절·붉은 피라미드는 고대 이집트의 건축 실험실과도 같습니다. 실패와 수정, 보강을 거쳐 마침내 완성형 피라미드에 도달했기 때문입니다. 사카라의 계단 피라미드가 "별을 향한 계단"이었다면, 다슈르의 굴절·붉은 피라미드는 "태양빛을 닮은 완전한 삼각형"으로 나아가는 과정이었습니다. 이 여정 덕분에 쿠푸의 대피라미드라는 인류 최대의 건축물이 탄생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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