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라미드의 탄생: 마스타바에서 계단 피라미드까지
목차
1) 피라미드의 뿌리, 마스타바
피라미드가 처음부터 거대한 사각뿔로 등장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 전 단계는 마스타바(Mastaba)라는 주로 흙벽돌로 만든 직사각형 무덤이었습니다. '마스타바'라는 이름은 아랍어로 "긴 벤치"를 뜻합니다. 위에서 보면 벤치처럼 평평하고 길게 뻗어 있어 붙여진 이름입니다.
마스타바의 내부에는 방과 통로가 있었고, 지하에는 시신을 매장하는 공간이 마련되었습니다. 벽에는 음식·재물·하인 그림이 새겨져 있어, 죽은 자가 사후 세계에서도 풍족하게 살기를 기원했습니다.
초기 왕조 시대(제1·2왕조)의 왕과 귀족 무덤은 대부분 이런 마스타바 형식이었는데, 특히 사카라 지역에 집중되어 있었습니다. 이곳은 나일강 서쪽의 안정된 암반 지대였기 때문에, 무덤 건설에 최적이었습니다.
[참고] 왕들의 묘지는 주로 아비도스(움 엘-카아브)에 자리했고, 고대 이집트의 수도였던 멤피스 지역의 고위 관료·귀족은 사카라의 마스타바에 많이 묻혔습니다.
2) 네체리케트와 건축가 임호테프의 도전
기원전 27세기, 제3왕조에 이르러 한 파라오가 기존 전통을 뒤흔듭니다. 바로 네체리케트(후대에 조세르로 불림)입니다. 그는 자신만의 무덤을 더 크고, 더 눈에 띄게 만들고자 했습니다. 이때 그의 곁에는 전설적인 재상 임호테프(Imhotep)가 있었습니다.
임호테프는 단순한 건축가가 아니었습니다. 의학·천문학·문학에 능했던 다재다능한 천재로, 후세에는 의술의 신으로 신격화되기도 했습니다. 그가 제안한 혁신은 바로 마스타바를 쌓아 올려 계단처럼 만든 새로운 무덤이었습니다.
3) 최초의 피라미드, 사카라의 계단 피라미드
이렇게 해서 탄생한 것이 바로 사카라의 계단 피라미드입니다. 사카라의 계단 피라미드도 원래는 단순한 직사각형 마스타바(약 높이 8m)에서 출발했습니다. 이후 확장 과정에서 층을 하나씩 덧대며 6단 계단형 구조, 최종 높이 약 62m, 밑변 약 121×109m에 이르는 거대한 건축물이 완성되었습니다. 이것은 인류 최초의 본격적인 석조 건축물로 평가받습니다.
계단 피라미드의 구조는 단순히 무덤이 아니었습니다. 내부에는 미로 같은 통로와 방이 얽혀 있고, 매장실은 원래 왕의 시신을 두기 위해 만들어졌으나 실제 미라는 발견되지 않았습니다. (도굴된 것으로 추정)
4) 거대한 복합체, 왕의 영생을 위한 무대
사카라의 계단 피라미드는 복합 장례 단지의 핵심이었습니다.
- 피라미드를 둘러싼 거대한 석벽(남북 약 545m, 동서 약 277m)
- 왕의 장례 신전
- 상징적인 더미문(dummy door)과 의례 뜰
- 남쪽 무덤(상하 이집트 지배자의 위상을 상징한다고 해석)
이 단지는 단순히 왕의 무덤이 아니라, 파라오가 죽은 뒤에도 부활 의식을 반복적으로 재현하는 무대였습니다. 특히 세드 축제(Sed Festival)라 불린 즉위 30주년 장례·재위 갱신 의식의 부조가 남아 있어, 파라오가 영원히 젊음을 회복한다는 믿음을 보여줍니다.
5) 북향의 비밀
흥미롭게도 계단 피라미드는 남북 방향으로 길게 배치되어 있습니다. 이는 하늘의 북극성과 연결하기 위한 상징으로 해석됩니다. 당시 이집트인들은 지지 않는 별, 즉 항상 같은 자리에 빛나는 별에 파라오의 영혼이 닿아야 영생을 얻을 수 있다고 믿었습니다.
후대의 일반형 피라미드가 태양과 동쪽 일출을 중시한 것과는 다른 점입니다. 계단 피라미드는 말 그대로 별을 향한 계단이었던 셈입니다.
6) 계단 피라미드의 의의
사카라의 계단 피라미드는 이후 피라미드 건축의 출발점이자 실험장이었습니다.
- "흙벽돌 → 석재"라는 재료 혁신
- "단순 무덤 → 장례 복합체"라는 공간 혁신
- "지상 건축 → 하늘로 솟는 상징"이라는 종교적 혁신
이 모든 것이 네체리케트와 임호테프의 도전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오늘날 여행자가 사카라를 찾으면, 단순히 낡은 돌더미를 보는 것이 아니라 인류 최초의 거대 건축 실험실을 걷는 셈입니다. 계단 피라미드 옆에는 귀족 마스타바와 아피스 황소를 모신 지하묘 세라페움 같은 볼거리도 많아, 기자 못지않게 흥미로운 장소로 꼽힙니다.
맺음말
마스타바에서 출발해 계단 피라미드로 발전한 과정은 단순한 건축 실험을 넘어, 이집트인들의 사후 세계관·별과 영생에 대한 믿음이 건축으로 구체화된 순간이었습니다. 이후 스네프루·쿠푸로 이어지는 거대 피라미드 시대는 이 혁신이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것입니다.
사카라에 서서 계단 피라미드를 올려다보면, 지금도 4,600년 전 파라오와 건축가 임호테프의 상상력이 고스란히 전해지는 듯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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