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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쓸여행사전

[이집트] 파라오의 탄생 - 고대 이집트 첫 왕을 찾아서

by TravelDive 2025. 9. 4.

파라오의 탄생 - 고대 이집트 첫 왕을 찾아서

이집트 여행을 하다 보면, 누구나 한 번쯤 "파라오"라는 단어를 만나거나 떠올리게 됩니다. 하지만 정작 파라오라는 말이 언제부터 쓰였는지, 그리고 첫 번째 파라오가 누구인지에 대해서는 아직도 논쟁이 많습니다. 오늘은 '파라오'라는 칭호의 의미와 제1대 파라오의 정체에 대해 이야기 해보겠습니다!


📜 파라오란 무엇인가?

'파라오(Pharaoh)'라는 말은 고대 이집트어 '페르-아아(Per-aa)', 즉 '큰 집(왕궁)'에서 비롯되었습니다. 처음에는 건물을 뜻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곧 왕 자체를 가리키는 말로 바뀌었습니다.
다만 이 단어가 왕의 공식 칭호로 굳어진 것은 기원전 18왕조 후반~19왕조 초반(투트모세 3세 이후, 람세스 대왕 시대 무렵)입니다. 그 이전에는 왕을 호루스의 화신, 태양신 라의 아들 같은 신성한 칭호로 불렀습니다.


⚖️ 파라오의 임무 - 마아트를 세우는 자

고대 이집트인들은 세상을 지탱하는 보이지 않는 질서를 마아트(Ma’at)라 불렀습니다. 마아트는 정의, 조화, 법, 섭리를 모두 포함하는 개념으로, 왕은 신 대신 이 질서를 지상에서 유지해야 했습니다.
그래서 파라오는 단순한 군주가 아니라 신과 인간 세계를 잇는 대리자였습니다. 때로는 '네체르 네페르(완전한 신)'라는 찬사적 칭호로 불리기도 했습니다.

또한 파라오는 일정 주기마다 열리는 세드(Sed) 축제를 통해 통치 정당성을 갱신했습니다. 이는 왕이 여전히 강력하고 신에게 선택받은 존재임을 백성과 신 앞에서 확인하는 중요한 종교적 행사였습니다.


👑 파라오의 다섯 이름

중왕국 시대 이후, 파라오의 이름은 다섯 가지 왕호로 확립되었습니다. 이는 단순한 호칭이 아니라 왕권과 신성을 상징하는 체계였습니다.

  1. 호루스명: 왕이 하늘의 매 신, 호루스의 화신임을 나타냄
  2. 두 여신명(네브티명): 상·하 이집트의 수호 여신 네크베트(독수리)와 와제트(코브라)의 보호를 받음을 상징
  3. 즉위명(상하 이집트 왕명): 사초(Upper Egypt)와 벌(Lower Egypt) 기호와 함께 쓰인 이름
  4. 출생명(라의 아들명): 태양신 라의 아들임을 보여주며, 카르투슈 안에 새겨짐
  5. 황금 호루스명: 영원한 왕권과 신성과 관련된 상징적 이름

룩소르의 카르나크 신전이나 아비도스 신전을 가면 이런 왕호들이 새겨진 비문을 직접 볼 수 있습니다.

 


🏺 제1대 파라오는 누구인가?

고대 이집트의 통일은 기원전 3100년경 이루어졌습니다. 하지만 첫 왕의 정체는 여전히 수수께끼입니다.

  • 고대 역사가 마네톤은 첫 왕을 메네스(Menes)라 기록했습니다.
  • 아비도스 왕명표와 토리노 파피루스에도 '메니(Meni)'라는 이름이 등장합니다.
  • 그러나 고고학에서는 ‘메네스’라는 이름이 직접 나오지 않고, 대신 나르메르(Narmer)아하(Aha)라는 두 인물이 후보로 거론됩니다.

🐂 나르메르 팔레트

1897~98년 히에라콘폴리스에서 발견된 나르메르 팔레트는 높이 64cm의 석판으로, 오늘날 카이로 이집트박물관에 소장되어 있습니다.
앞면에는 백관(상 이집트 왕관)을 쓴 모습, 뒷면에는 적관(하 이집트 왕관)을 쓴 모습이 새겨져 있어 상·하 이집트 통일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유물로 꼽힙니다.

나르메르 팔레트
나르메르 팔레트 / 출처: 위키피디아


🦅 아하와 '메니'

한편 아비도스에서 발견된 상아 라벨에는 '아하'라는 이름과 함께 두 여신명 '멘(메니)'가 새겨져 있어, 메네스가 아하라는 설도 제기됩니다.
따라서 일부 학자들은 "나르메르는 제0왕조 마지막 왕, 아하는 제1왕조 초대 왕"이라는 해석을 내놓습니다.

결론적으로 메네스가 나르메르라는 설과 메네스가 아하라는 설이 공존하고 있으며, 아직 확정된 결론은 없습니다.


🎨 파라오의 상징 - 왕관과 의장

파라오의 권위를 보여주는 대표적 상징은 왕관과 의장이었습니다.

  • 백관(상 이집트)
  • 적관(하 이집트)
  • 이중관: 상·하 이집트 통일의 상징
  • 청관(케프레시): 전투용 투구로 추정

또한 파라오는 네메스 머리수건(줄무늬 천)과 상징적 지팡이(헤카), 채찍(네크하)을 손에 든 모습으로 자주 묘사됩니다. 카이로 박물관이나 룩소르 신전의 조각상에서 이런 모습들을 쉽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 여행자가 만날 수 있는 흔적들

  • 카이로 이집트박물관: 나르메르 팔레트 실물 전시
  • 아비도스 신전: 세티 1세가 새긴 왕명표에서 '메니'라는 이름 확인 가능
  • 룩소르 & 카르나크 신전: 파라오의 왕호와 상징이 새겨진 비문 다수 존재
  • 아부심벨 신전: 람세스 2세가 신격화된 모습으로 거대한 좌상에 새겨져 있음

실제로 여행자가 마주하는 이 유물들은 단순한 전시품이 아니라, 문명 탄생의 순간을 기록한 상징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 마무리

파라오는 단순한 군주가 아니라 신의 대리자, 마아트를 세우는 자, 문명 그 자체였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어렸을 때부터 듣던 파라오. 그 중에서도 첫 파라오의 정체가 아직도 논쟁 중이라는 사실은, 5천 년 전의 이야기가 여전히 우리에게 흥미로운 주제라는 것을 보여줍니다.

카이로의 박물관에서 나르메르 팔레트를 바라보거나, 아비도스 신전에서 '메니'라는 이름을 확인할 때 오늘 이 글에서 읽은 내용들을 떠올리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 참고 자료

  • Wilkinson, T. The Rise and Fall of Ancient Egypt. Random House, 2010.
  • Shaw, I. The Oxford History of Ancient Egypt. Oxford University Press, 2000.
  • 이집트박물관 공식 전시 해설 / UNESCO 기록자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