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이판 여행 전에 알아두면 좋은 이야기들
1. 차모로 사람들과 라떼 스톤 🗿
사이판과 괌, 북마리아나 제도의 원주민은 차모로(Chamorro)라 불립니다.
차모로인은 약 3,500~4,000년 전 남태평양에서 마리아나 제도로 이주해온 해양 민족이에요. 별과 바람을 조류를 읽는 뛰어낙 항해 능력으로 유명했지요.
이들의 대표적인 문화유산이 라떼 스톤(Latte Stone)인데, 기둥 위에 반달 모양 돌을 얹어 집의 기초로 쓰던 구조물이에요. 지금은 괌과 사이판 곳곳에서 라떼 스톤을 기념비처럼 볼 수 있는데, 단순히 건축물이 아니라 조상 숭배와 공동체의 상징이었다고 합니다.
By CT Snow from Hsinchu, Taiwan - latte stones at Taga House on Tinian, CC BY 2.0,
https://commons.wikimedia.org/w/index.php?curid=4052689
사이판 인근 티니안이라는 섬에 가면 '타가'라는 괌의 족장이 살던 집(타가 하우스)이 있는데 이곳에서도 라떼 스톤을 볼 수 있어요.
2. 제2차 세계대전의 흔적들 ⚔️
사이판은 1944년, 태평양 전쟁의 전환점이 된 '사이판 전투'가 벌어진 장소입니다.
사이판은 원주민인 차모로들이 살고 있다가 1521년 마젤란이 세계 일주 항해 중 이곳에 도착하며 서양 세계에 알려졌습니다.
17세기 중반, 스페인이 사이판을 지배하기 시작했고, 1898년 미국-스페인 전쟁에서 진 스페인은 사이판을 포함한 북마리아나를 독일에 팔면서 사이판은 독일령이 되었습니다.
그러다 제1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이 사이판을 점령하게 됐습니다. (제1차 세계 대전 때는, 독일과 일본이 서로 적국이었거든요!)
제2차 세계대전 당시에는 일본 남쪽 방위선의 핵심이 바로 이 사이판이 되었습니다. 미국은 위치적 요충지였던 이 사이판을 점령하려 했고 이것이 바로 사이판 전투였답니다!
사이판은 일본 본토에서 약 2,400km 떨어져 있어, 미군의 B-29 폭격기가 일본까지 직항할 수 있는 거점이었어요.
즉, 미국이 사이판을 점령하면 일본 본토 폭격이 가능해져 전세를 바꿀 수 있었죠. 그래서 일본군은 "사이판을 잃으면 일본은 끝"이라 할 정도로 필사적으로 지켰습니다.
그러나 결국, 미군이 사이판을 점령하게 되자 사이판에 있던 일본군과 본토에서 이주한 일본 민간인들은 벤자이 절벽(Benzai Cliff)와 자살 절벽(Suicide Cliff)에서 몸을 던졌어요.
지금은 사이판의 관광지 중 하나로 알려져있지만, 아픈 역사가 남아있는 절벽에는 위령비가 세워지고 추모 공간이 되었습니다.
사이판 바다에도 제2차 세계대전 당시의 B-29 폭격기, 난파선, 위령비 등이 남아있고 현재는 스쿠버다이버들이 찾는 장소가 되었어요.
3. 사이판의 설탕왕, 마쓰에 하루지 🍬
제1차 세계대전 때 일본이 독일령이던 마리아나 제도를 점령했고, 사이판을 포함한 마리아나 제도를 위임통치령으로 관리하게 됩니다.
20세기 초, 일본 출신 사업가인 마쓰에 하루지(松江春次, 1865~1926)가 사이판을 비롯한 마리아나 제도에 대규모 사탕수수 산업을 일으키면서, 현지인들과 일본인 사이에서 "설탕왕"이라고 불렸습니다.
마쓰에는 대규모로 이주 노동자를 데려와 넓은 사탕수수밭과을 경작하고 더 나아가 주류 공장, 제빙 공장, 정유소 등을 설립했어요.
이렇게 사탕수수 산업이 번성하면서 일본인, 오키나와인, 한국인 노동자들이 대거 이주해 사이판에 정착했습니다.
사이판의 경제 산업을 키운 업적을 기리기 위해 가라판에 설탕왕 공원이 조성되었고 그 가운데에는 마쓰에 하루지의 동상이 세워졌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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